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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croissant)란? - 크루아상역사, 크루아상유래, 크루아상종류

쁘이로드v 2019. 9. 15. 16:48

크루아상은 밀가루와 버터로 반죽을 빚어 켜켜이 층을 낸 페이스트리의 한 종류로 초승달 모양의 프랑스 대표 빵입니다. 

크루아상 


크루아상이란 이름도, 특유의 초승달(crescent) 모양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크루아상의 겉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얇고 바삭하고 속은 밀가루가 층층이 쌓여 있는 모양으로 겉과는 다르게 촉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버터를 가득 머금고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돕니다. 겉이 계속 바스러져서 먹을 때 조심조심 한입에 먹어야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습니다.  

크루아상도 바게트와 동일하게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빵이지만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고 전해오는 가설도 있으니깐요. 저는 이 글에서 그 가설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을 드리려합니다. 빵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저절로 세계사를 알게 되는 느낌이네요. 

첫 번째 가설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크루아상이 시작된 설입니다. 
17세기 오스트리아 빈을 포위한 오스만 제국이 한밤중 몰래 지하터널을 파서 빈으로 잠입을 시도하다 다음 날 먹을 빵을 굽기 위해 밤을 새워 일하던 제빵사 피터 벤더(Peter Wender)에게 들키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피터가 오스트리아 군에 이 사실을 알린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고 이에 기여한 제빵사 피터 벤더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스만 제국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으로 빵을 구울 특권을 그에게 부여하면서 크루아상이 탄생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또,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제빵사 피터 벤더가 이에 대한 답례와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오스만 제국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빵을 구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크루아상을 굽기 시작한 제빵사가 피터 벤더 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던 여러 제빵사라는 의견도 있고, 1686년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사실이든 초승달 모양의 빵을 먹는다는 것은 오스만 제국을 제압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크루아상은 1774년 합스부르크(당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지배함)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에 전해졌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따라 프랑스 왕궁으로 온 오스트리아 출신의 제빵사들이 초승달 모양의 빵을 프랑스 왕궁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빵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가설은 1839년경 파리의 ‘리슐리외 가(街) 92번지(92 rue de Richelieu)’에 비엔나 풍의 제과점을 연 오스트리아의 포병장교 출신의 아우구스트 장이 소개한 것이라는 설입니다. 오스트리아에는 약 13세기부터 만들어 먹던 것으로 추정되는 키펠(Kipferl)이라는 초승달 모양의 빵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트 장은 자신의 제과점에서 이 빵을 만들어 팔았고, 파리의 다른 제과점에서 이를 모방하면서 오늘날의 크루아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입니다. 

 

오스트리아 디저트 - 키펠

놀라운 사실은 2013년 8월 2일 샤리아 위원회에서 율법적 결정을 통해 전통 프랑스 빵인 크루아상을 금지시켰습니다. 
금지 이유는  '초승달' 모양의 이 빵이 '식민지'의 의미를 담고 있어 빵을 금지시켰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크루아상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초승달' 모양은 곧 이슬람의 패배를 상징하기 때문인거 같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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